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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쥬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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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표지 추천글에 보면 작가 이명랑을 여자 성석제라고 표현하고 싶다는 말이 있는데
삼오식당을 읽으면서 그 말이 얼마나 꼭 들어맞는 말인지 고객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유려한 필치와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영등포 시장통에 어울릴만한
때론 유쾌하고 때론 불편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한...
달변에 가까울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는 성석제의 소설들과
이명랑의 그것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보였습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책은 없었던 듯 싶습니다.
삼오식당의 둘째딸이자 작가인 나, 지선이의 시선으로 옮겨놓은 시장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삶의 푸덕거림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누군가 내게 와서 시장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놓는 듯한 느낌,
다른 사람들의 남루하고 비밀스런 삶의 이면을 훔쳐보는 듯한 아찔한 그런 느낌까지...

언제나 시장통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했지만
결국은 시장통을 못 벗어나고 근처를 배회하는 주인공 지선이나 그녀의 친구 정희처럼
삼오식당에서 밥을 대 먹는 사람들은 영등포시장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희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선의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도 삼오식당을 못 벗어나고,
똥할매가 미쳐가면서도 공중화장실 앞을 못 벗어나는 것도
그 장소가 이제는 그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아무리 지긋지긋해도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만 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까닭일 것입니다.

『삼오식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불운한 경험과 마음 속 깊은 욕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무릎이 튀어나오도록 악착같이 밥장사를 하여 세 딸을 키워낸
삼오식당 여주인에서부터 노름빚으로 달아난 무능력한 남편을 둔 과일가게 O번 아줌마,
사위에게 죽을 만큼 맞고 온 딸에게 정력차 밖에 타 줄 수 없는 차씨 아줌마,
일수꾼 특유의 곤조를 자랑하는 로타리 할머니, 술집 여자의 마지막 순애보를 처절하게
대변하는 노랑머리, 동네의‘걸어다니는 생중계 소문 전파 라디오’ 고물장수 박씨 할머니,
반 평도 안 되는 평상 위에서 아들딸 공부시키고 살림 밑천 마련한 봉투 아줌마,
번쩍거리는 눈동자를 굴려가며 공중 화장실을 지키는 똥할매 등...
주인공은 시장에 떠도는 온갖 이야기들을 자신의 이야기와 버무려 맛깔스럽게 전하며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밑바닥 인생에도 사랑과 꿈이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전달합니다.
비록 그 사랑의 손길이 투박하고 서투르고, 심지어 꿈은 저당잡혔을 망정...
삶이란 '솔직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지막히 일깨워 줍니다.

화장실에 얽힌 지선의 고백을 보며,
이 부분이 픽션이 안닌 정말 영등포시장통에서 자랐다는 작가 이명랑의 자전적 고백이라면
정말 힘든 사춘기를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쩜 그런 힘든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삼오식당'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요.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이 저는 더 인상적이더군요...
「 백설공주는 공주치고는 참 더러운 팔자를 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 빼어난 미모.
    그 덕에 죽지 않고 살다가 백설공주는 마침내 왕자랑 결혼한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에도 더럽게 박복한 팔자를 타고 태어난데다 시선만 마주쳐도 고개를 외로 틀어야할 만큼
    혐오스러운 외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그들의 세상살이에는 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인생에‘그러나’로 시작되는
    히든카드도 하나 감추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生)을,
    그 박복한 운명을 견디어내는 것일까?
    연작소설 『삼오식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뭔가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듯...

앙쥬...

(2003. 11)
Posted by 앙쥬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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