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문화 이야기 / 2007. 11. 15. 13:57
영국에서 아빠가 불러주길 기다리며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피난을 간
왕 치아즈(탕웨이)는 홍콩에 있는 대학에서 마음에 끌리는 남자 광위민(왕리홍)을 따라
연극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의 뜻에 따라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섹스를 하게 된다.
세상에...자기 욕망을 억눌러도 광위민처럼 억누를 수 있을까?
단지 나라를 위한다는 충정만으로? 자기가 연정을 품고 있는 여자까지 망쳐가면서???
도대체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었다...-_-;;
그의 어설픈 영웅놀이가 그의 친구들 모두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순수하기만 했던 치아즈는 요부로 변신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치아즈는 적이었던 이장관(양조위)을 사랑하기에 이르고 만다!!!
더이상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키스를 하는 광위민에게
"왜 3년 전에는 키스하지 않았느냐?"고 묻던 왕 치아즈의 서글픔...
어쩌면 3년 전에 광위민이 그의 마음을 치아즈에게 고백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수도...
실제다 아니다 말 많았던 정사씬은 야하다기보단 서글픈 순간들이더라.
어찌보면 폭행 같고, 어찌보면 폭력 같고, 어찌보면 사랑같기도 한 그 순간들은
언제 일본이 패망할지, 언제 저항세력에 의해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 차
온통 '경계'로 가득찼던 이장관의 내부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던 순간들이기도 했고,
치아즈에겐 자신이 무얼하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이장관의 그런 두려움을,
서서히 생기는 마음의 균열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권총이 옆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권총으로 쏴죽이지 못하고 섹스를 하는 치아즈나
언제 죽을지몰라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권총을 옆에 풀러두고 섹스를 하는 이장관이나
스스로 자신들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탐닉하게 될 뿐이니...
그러던 어느 날, 이장관은 막부인에게 서류심부름을 부탁하고
저항세력의 호들갑 속에 이장관이 지명한 사람을 찾아가 서류를 건넨 치아즈에게 벌어진 일은...
다름아닌 이장관의 깜짝선물이었으니...
6캐럿짜리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에 극장에 있던 모든 여인네들이 숨을 죽이며 환호했다.
이장관의 선물은 치아즈에게 무척이나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다.
비록 그것이 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아닌 단순한 은반지였더라도...
결국 치아즈는 이장관을 죽이지 못했고, 모두 잡혀가 죽음을 당하기에 이른다.
원망어린 눈으로 치아즈를 바라보던 동료들...과연 누가 치아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양조위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멋지고 카리스마 짱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마음 아프더라.
신인인 탕웨이는 정말 제2의 장만옥이 될 거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싶더라.
이안 감독이 진주를 발견해냈다고나 할까...
영화를 보고나서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짠했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이 주는 여운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이 너무 슬퍼서...
대화도 없이, 다정한 애무도 없이 서로의 몸에 싸움하듯 탐닉하던 두 사람의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이 너무 애잔해서...
막부인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녀의 죽음을 냉정하고 명령하고......
집에 돌아와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양조위의 눈빛과
죽음의 순간 너무도 담담하던 탕웨이의 눈빛이 한참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랑도 결국은 남루할 수 밖에 없다.
6캐럿짜리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로 표현하더라도 말이다...
사랑 참...
앙쥬...
(200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