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책] 조경란의 '코끼리를 찾아서'

앙쥬89 2002. 10. 10. 10:38
조경란의 세번째 소설집인 '코끼리를 찾아서'...
이 책에 실린 총 7편의 중·단편들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공통어가 있다면
그것은 '사라짐'입니다...
복국을 끓여먹고 자살한 한 할머니도 있고,
2년 전쯤 홀연히 소식을 끊고 사라진 사촌 언니도 있고,
어떤 미술 선생의 자살도 있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의 죽음도 있습니다...

가장 인상 적이었던 것은 '나는 마을의 이발사'라는 작품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연병장에 2천 명 정도가 모였어요.
간식으로 사과 1개씩을 지급하더군요." 그가 자조하듯 내밷었다.
사과. 2천 명. 거기까지 듣고 나서 나는 캔맥주 하나를 더 꺼냈다.
"실시! 라는 구령 소리에 맞춰 연병장에 모여있던 2천 명이 한꺼번에 와삭, 사과를 씹기 시작했죠.
 와삭와삭........그건 정말이지 끔찍한 소리였어요. 아마 상상이 잘 안 갈 거예요."

단절과 결핍, 그리고 존재의 부재로 인해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인 공황상태, 그리고 각각의 죽음들이 썩 유쾌한 뒷맛을 남기지는 않지만
문장 자체는 굉장히 다듬어진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묘사적인 그녀의 화법은 종종
전체 내용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길지 않고, 화려한 수사어구도 쓰지 않는 그녀의 문체는
읽는 사람의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 작품 전체를 긴장감있게 읽도록 유도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의도이든 아니든...

누가 제게 이 책이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여러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고
"그다지 재미 없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제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조경란의 팬이 아니라면...


앙쥬...

[200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