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책]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앙쥬89 2002. 10. 11. 13:14
<목차>

1.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2. 천애윤락
3.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4. 책
5. 천하제일 남가이
6. 욕탕의 여인들
7. 꽃의 피, 피의 꽃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유쾌하게 읽은 책입니다.
낄낄거리며 책을 읽다가 문득 '어? 이게 웃을 일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성석제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삶의 주류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입니다.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 황만근도 조금 모자란 반푼이 같은 인물로
평생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순리에 거슬르지 않고 살았지만 끝끝내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마는 불쌍한 사람이고,
'천애윤락'의 동환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이 꼬이기만 하는 불쌍한 인생의 소유자입니다...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에서는 쾌활하지도 명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곗날이라는 미명아래 모여
속으론 각자 다른 계산과 속셈을 가지고, 겉으로는 딴 말을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꽃의 피, 피의 꽃'에서는 평생을 "첫판은 먹는다"는 신념으로
온갖 종류의  노름판을 전전하며 수행(?)을 거듭하는 도박사의 이야기로
그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독자들에게 전해줍니다.

「나는 내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내기가 되는 대부분의 게임들을 좋아한다.
   인생이 먼길을 걷는 것이라면 게임 또는 게임의 정화인 내기는
  그 길가에 피어나는 꽃봉오리다.
   단 지구상에 피어나는 꽃의 90퍼센트는 냄새가 없거나 심지어 더럽다는 것을 전제해두고서.
   내기 좋아하다 패가망신에 이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제발 좀 들으시오.」

성석제의 소설은 소설가입네하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그냥 옆집 아저씨가 지나가다 들려주는 동네사람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분명히 슬픈 현실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비극적이거나 슬프지 않고 오히려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낄낄거리며 읽고 나면 삶에 대한 진한 연민이 생기게 되구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성석제라는 작가의 역량이겠지요...

요즘 소설들을 읽으면 작가들이 '나 이만큼 똑똑하다'라는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어 불편할 때가 많았는데
모처럼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글쎄, 아이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책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지 뭡니까?

앙쥬...

[200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