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앙쥬89
2003. 3. 23. 23:42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은 정말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커다란 잠자리 안경에 뚱뚱한 몸매, 게다가 아무렇게나 입은 듯한 촌티 풀풀 풍기는
노처녀 툴라는 서른살이 되도록 연애경험 한 번 없는 미운오리입니다...
가업인 그리스 식당 '댄싱 조르바'에서 새벽부터 일하지만
식구들 모두 그녀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아버지는 그리스 남자랑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그리스 여자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거라며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인 신랑감을 구해오라고 성화입니다...
어느날, 식당에 처음 온 이안을 본 순간 무엇엔가 감전된듯한 느낌을 느낀 툴라는
뒤늦게 대학에 등록, 컴퓨터를 배우고 외모를 꾸미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생활에 빠져 삶의 활력을 찾아 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 아버지와의 심각한 대립은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했구요...
우연같은 필연으로 인해 이안과 사귀게 된 툴라,
둘은 서로에게 점점 끌리지만 이안이 그리스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것이
결혼의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 장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안의 처절한 노력이 시작되고
그가 떠들석한 한 집안의 가족구성원으로 인정받아가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려집니다...
미운오리 같던 툴라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은
너무도 식상해서 감동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툴라가 대학에서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대생들 사이에 당당하게 함께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툴라는 어린 시절, 생각만 했었지 겁이 나서 감히 실천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며
말할 수 없는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누나를 보며 남동생 닉도 자신의 재능을 찾겠다며
야간대학에 등록하는 열의를 보입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토록 미국인 사위를 마다하던 툴라의 아버지가
서로 배경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그래도 우린 모두 한가족이란 말을 할 때
뻔히 그런 대사가 나올 것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감동스러웠습니다...^^
가족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살던 툴라는 결혼 이후 자신의 가족을 새롭게 인정합니다...
자랑스럽던 그렇지 못하던 가족은 가족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요...
그래요,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족을 떼어낸 '나'로만을 살 수 없으니까요...
가끔은 그게 부담스럽고 힘들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앙쥬...
(2003.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