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책]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

앙쥬89 2004. 9. 24. 20:37
사랑에는 참 여러가지 얼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 책입니다.
남편의 애인 머리에 빨간 리본을 묶어 1주년 기념선물이라며 데려오는
아내의 남편사랑이라니...ㅡ,.ㅡ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답게 쿨하고 단아하고 예쁜 글입니다.
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역시나 뭔가 불편해보입니다.
알콜중독에 정서불안증세가 있는 아내와 호모인 남편의 오묘한 결합이라니...
그 둘은 정서불안증세가 정신병의 범주에까지 들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서와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진단서를 서로 교환하고 결혼을 합니다.
양쪽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린다는 미명하에...
그리고 서로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서로의 애인을 인정한다는 조건하에.

무츠키는 그 조건과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잘 해 나가는 편이지만
쇼코는 점점 무츠키에게 의존하고 싶어하고, 그를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그렇지만 무츠키를 전적으로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는 점에 대해 슬퍼하게 됩니다.
그건 꼭 무츠키와 섹스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부부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가져야 할
어떤 감정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스러움때문이기도 합니다.

뭐 어쨌거나 무츠키와 쇼코의 결혼은
쇼코에게도 무츠키의 애인인 곤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지만
그래도 그들은 상처를 절망으로 만들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새로운 타협안을 제시해 나갑니다.
곤과 무츠키의 정자를 섞어 인공수정을 해 셋 모두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쇼코의
기가 막힌 발상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한 쇼코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하는 생각에
한없이 그녀가 가녀워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로 잰듯이 반듯반듯하고 정상적으로 모범적으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다수에서 벗어나 마이너리티로 살아야하는 삶은 너무 어렵고 힘이 드는 건 아닌지...
쇼코도 곤도, 그리고 무츠키도 그 어렵고 험란한 길을 선택했으니
앞으로도 그들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떻게든 헤쳐나가겠지요...
아무래도 가장 상처를 입게 되는 쪽은 쇼코쪽이 아닐까 생각되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었으니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거겠지요.

정말 사랑이 뭘까요?
다시금 뜬금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그 쉽고도 어려운 질문을 말입니다...

앙쥬...

(200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