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책]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

앙쥬89 2005. 12. 12. 10:01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9,500원

나는 한 작품이 맘에 들면 그 작가의 작품을 쭉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좋은 버릇인지 나쁜 버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게 한 사람의 작품을 이어 읽다보면 역시 멋지다고 계속 감탄하게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뭐야? 이 한 작품만 빤짝였네...하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직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는 않았기에
여전히 러브리 모드가 유효한 작가 중 한명이다.
똑같은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작품의 분위기가 매번 새로운 느낌을 준다.

얼마전에 읽은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소설.
바나나 소설 중에서 가장 긴, 정말 긴 장편소설인 '암리타'에는
새로운 가족 관계가 나온다.
주인공 사쿠미가 말하듯 어떤 형태든 함께 살면 그게 가족이다.
그것이 꼭 혈연으로 맺어졌든 그렇지않든...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희미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사쿠미.
그리고 자살을 해 버린 아름다운 그녀의 동생 마유.
또 초능력을 발달시킨 조그만 머리 속이 생각으로 가득 찬 그녀의 또 다른 동생 요시오.
한 번의 사별과, 한 번의 이혼,  딸의 자살, 그럼에도 꿋꿋한 그녀의 어머니.
가정을 자신의 손으로 깨어버린 그녀의 어머니의 친구 준코 아줌마.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놀자-모드인 그녀의 사촌동생.
그리고, 그녀의 죽은 동생의 애인이었던, 지금은 그녀의 애인인 남자 류.

거의 바나나의 소설이 그렇 듯 이 소설도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나가는 지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다.
조금 더 압축해도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고, 역시 바나는 이렇게 긴 호흡의 소설보다는
단편이나 중편소설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이 소설도 나쁘지 않았다.
바나나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도 살아있고,
혼이니 경계니 하는 좀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다고 해야나나,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해야하나...

나름대로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이채롭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나 사쿠미의 엄마라고나 할까?
남편의 죽음, 재혼과 이혼, 딸의 죽음, 아들의 방황 등 한사람이 혼자 다 겪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큰 일들만 겪은 중년의 아줌마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기발랄하고 에너자틱하다.
어쩌면 엄마가 그렇게 생기발랄하게 꿋꿋하게 버텨주었기에
다른 가족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참 본받고 싶은 강한 생명력이다.

앙쥬...

(2005. 12)